AI 시대,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것
AI와 비교해서 내가 잘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살아온 시간이 만들어낸 것. 그것이 진짜 자산이다.
어느 날 후배의 보고서를 검토하다 오래 멈춘 적이 있었다. 내용은 괜찮았다. 구조도 논리도 깔끔했다. 그런데 뭔가 빠진 것 같았다. 한참 생각하다가 알았다. 이 문제를 겪어본 사람의 목소리가 없었다. 여백에 짧게 메모했다. 현장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 숫자 뒤에 있는 이야기. 그 메모가 보고서를 살렸다. 그날 처음으로 자신이 가진 것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알았다.
첫 번째 단서 — 살아온 시간
수십 년의 경험이 만들어낸 것들이 있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몸으로 아는 것. 비슷해 보이는 두 상황이 실제로 어떻게 다른지를 감각으로 아는 것. 이것들은 데이터베이스에 없다.
철학자 마이클 폴라니는 말했다. "우리는 말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안다." 그는 이것을 '암묵지(tacit knowledge)'라고 불렀다. 숙련된 의사는 환자의 얼굴을 보는 순간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낀다. 이 앎들은 언어로 명시할 수 없다. 그러나 분명히 존재한다.
두 번째 단서 — 연결하는 능력
AI는 특정 영역에서 깊고 빠르다. 그러나 전혀 다른 영역들을 연결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음악을 알면서 동시에 경영을 아는 사람이 음악 산업을 다르게 본다.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여러 영역을 지나온다. 그 모든 것이 연결의 재료가 된다. 나만이 연결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세 번째 단서 — 나만의 관점과 책임
AI는 평균에 수렴한다.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했기 때문에, AI의 답은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만한 방향으로 모인다. 그것이 강점이지만 동시에 한계다. 독특한 관점, 기존과 다른 방향은 AI에게서 나오기 어렵다.
그리고 책임. AI는 제안하지만 책임지지 않는다. 인간은 다르다. 내가 한 말, 내가 내린 결정의 결과를 내가 감당한다. 그 책임이 판단에 무게를 준다. 책임지는 사람의 말과 책임지지 않는 존재의 말은 다르다.
AI가 없는 것을 더하는 사람
AI를 쓰면서 한 가지를 배울 수 있다. AI를 잘 쓰는 날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한 날이다. AI를 잘 못 쓰는 날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호한 날이다. AI의 문제가 아니다. 자신의 문제다.
AI에게 초안을 맡기되, 그 초안에 없는 것을 찾는 것. 현장에서 겪어본 것, 숫자가 말하지 않는 이야기, 논리로 포착되지 않는 감각. 그것을 더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다.
AI 시대를 어떻게 살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먼저 물어야 할 것이 있다. 지금 내가 하는 일 중에서 가장 나다운 것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