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의지
삶의 가장 근본적인 동기
1942년, 빅터 프랑클은 나치 강제수용소에 끌려갔다. 의사였던 그는 모든 것을 잃었다. 가족, 원고, 재산, 자유, 미래. 살아남을 가능성은 극히 낮았다. 그런데 그는 살아남았다. 그리고 살아남는 사람과 그렇지 못하는 사람의 차이를 매일 눈으로 목격했다. 그 차이는 신체적 강함도, 나이도, 지위도 아니었다. 삶에서 의미를 찾는 능력이었다.
수용소를 나온 프랑클은 이 관찰을 토대로 새로운 심리치료 이론을 세웠다. 로고테라피(Logotherapy). 그리스어로 '의미(logos)'와 '치유(therapy)'의 합성어다. 핵심 명제는 단 하나: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동기는 의미를 찾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쾌락을 추구한다 했고, 아들러는 권력을 추구한다 했다. 프랑클은 의미를 추구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것이 다른 모든 욕구의 토대라고 했다.
그런데 프랑클이 강조한 것은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었다. 의미는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 어떤 상황에서도, 심지어 가장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인간은 그 상황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이것이 의미 의지(Will to Meaning)다.
"의미는 발견하는 것이 아니다.
창조하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의미를 창조하는 3가지 방식
어떤 상황에서도 가능한 것
프랑클은 인간이 의미를 창조하는 방식을 세 가지로 분류했다. 이 세 가지는 상호 배타적이지 않다. 동시에 일어나기도 하고, 상황에 따라 어느 하나가 더 가용(可用)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세 번째다.
글을 쓰고, 가르치고, 만들고, 도움을 주는 것. 행위를 통해 세상에 흔적을 남기는 방식. 1인 브랜드를 만들고, 매거진을 발행하고, 책을 쓰는 것이 모두 창조적 가치를 통한 의미 창조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진실한 관계를 맺고, 깊은 사랑을 경험하는 것. 무언가를 만들지 않아도, 받아들이고 경험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된다. 예술, 자연, 관계가 이 경로다.
상황을 바꿀 수 없을 때도, 그 상황에 대한 태도는 선택할 수 있다. 이것이 인간에게 남겨진 마지막 자유다. 질병, 상실, 실패, 나이 듦 — 이것들 앞에서 어떤 태도를 선택하느냐가 의미를 만든다.
실존적 공허
40~50대에 가장 자주 찾아오는 것
프랑클은 '실존적 공허(Existential Vacuum)'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삶의 의미를 잃었을 때 오는 내면의 공허함이다. 이것은 우울증이나 불안과 다르다. 이유를 알 수 없이 텅 빈 느낌, 삶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느낌, 무기력함. 이것이 실존적 공허다.
40~50대의 전환기에 이것이 가장 자주 찾아온다. 열심히 살아왔는데 무엇을 위해 살아온 것인지 알 수 없을 때. 직함이 사라졌을 때. 자녀가 독립했을 때.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이것은 위기가 아니다. 의미를 재설계해야 한다는 신호다. 프리미너가 바로 이 순간을 위해 존재한다.
나는 지금 무언가를 창조하고 있는가? 글을 쓰거나, 가르치거나, 만들거나, 돕는 것 중 나를 살아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나를 가장 감동시키는 것은 무엇인가? 자연, 관계, 예술, 음악 중 어떤 경험이 "이것을 위해 살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가.
내가 바꿀 수 없는 상황 앞에서 나는 어떤 태도를 선택하고 있는가? 상황은 같아도 태도는 언제나 선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