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공부한다
38세에 세상에서 물러난 사람의 이야기
1571년, 프랑스 보르도의 귀족 미셸 드 몽테뉴는 갑자기 공직을 떠났다. 38세였다. 그는 자신의 성(城) 탑 꼭대기에 서재를 꾸미고 들어갔다. 창문도 적고, 외부와의 접촉도 최소화했다. 그리고 오직 한 가지만 했다. 읽고, 생각하고, 썼다. 주제는 하나였다. 나.
당시에 이것은 혁명적인 일이었다. 그 시대의 글은 신학, 역사, 철학이었다. 자기 자신을 주제로 쓴다는 것은 허영이고 오만으로 여겨졌다. 몽테뉴는 개의치 않았다. "나는 나 자신 외에 다른 주제를 갖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생각, 감정, 편견, 변화하는 마음을 있는 그대로 기록했다. 그 결과물이 『수상록(Les Essais)』이다.
에세이(Essay)라는 장르가 여기서 탄생했다. 에세(essai)는 프랑스어로 '시도'라는 뜻이다. 완결된 결론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시도해보는 것. 몽테뉴의 이 발명이 500년이 지난 지금도 살아있고, 프리미너 매거진의 장르적 조상이기도 하다.
"나는 나 자신 외에 다른 주제를 갖지 않는다.
이것이 나의 형이상학이고, 나의 물리학이다."
몽테뉴가 발견한 것
나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다
몽테뉴의 가장 핵심적인 통찰은 이것이다: 나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가 다르고, 아침의 나와 저녁의 나가 다르다. 인간은 변화하는 과정이지, 완성된 존재가 아니다.
이것은 불안한 생각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해방적이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는 고정된 자아상에서 벗어나는 것. 40대의 나는 20대의 나와 다르다. 그것은 타락이 아니라 성장이다. 그리고 50대의 나는 40대의 나와 또 달라질 것이다. 이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이 몽테뉴식 자기 공부다.
나는 아무것도 확실히 알지 못한다. 그것이 나의 출발점이다."
"나는 무엇을 아는가" — 이것이 몽테뉴의 좌우명이었다. 회의주의의 출발점이자, 진정한 자기 공부의 시작이다.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을 의심하는 것. 내 편견과 확신을 들여다보는 것. 이것이 가능할 때, 배움이 시작된다. Vol.25에서 다뤘던 자기대화가 바로 이 몽테뉴의 정신을 현대적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나를 공부하는 4가지 방법
몽테뉴에서 배우는 자기 탐구의 기술
몽테뉴는 방법론을 따로 서술하지 않았다. 그의 수상록 자체가 방법론이었다. 수상록을 읽으면서 추출할 수 있는 자기 공부의 핵심을 네 가지로 정리한다. 이 네 가지는 순서이기도 하고, 동시에 일어나는 태도이기도 하다.
자신의 생각, 감정, 반응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 판단하거나 수정하려 하지 않고, 먼저 본다. 몽테뉴는 자신의 게으름, 두려움, 모순도 숨기지 않고 기록했다.
관찰한 것을 글로 쓴다. 쓰는 행위 자체가 사유다. 머릿속에 있는 것이 글로 나오면서 비로소 형태를 갖는다. 몽테뉴에게 수상록은 자신을 이해하는 도구였다.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 나의 확신과 편견을 의심한다. "나는 무엇을 아는가"가 출발점이다. 이 의심이 새로운 이해를 위한 공간을 만든다.
변화하는 나를, 모순된 나를, 완성되지 않은 나를 받아들인다. 몽테뉴는 자신의 단점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수용이 진정한 자기 이해의 마지막 단계다.
하루 10분, 오늘 나는 어떤 생각을 했는가를 글로 쓴다. 완성된 에세이가 아니어도 좋다. 몽테뉴처럼, 시도(essai)가 먼저다. 결론은 나중에 와도 된다.
"지금의 나와 1년 전의 나는 어떻게 달라졌는가?" 변화를 관찰하는 것이 자기 공부의 출발점이다. 나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진행 중인 과정이다.
내가 가장 확신하는 것 하나를 골라 의심해본다. "나는 이것을 정말 아는가? 아니면 그냥 믿어온 것인가?" 몽테뉴의 회의주의가 여기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