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AI를 두려워하는가
두려움은 신호다. AI에 대한 막연한 불안이 실제로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지 냉철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AI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AI를 직접 써본 경험이 많지 않다. 두려움은 AI를 접할수록 커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잘 모를수록 커지는 경향이 있다. 이것이 첫 번째 단서다.
두려움과 불안의 차이
철학자 하이데거는 두려움을 두 가지로 구분했다. '두려움(Furcht)'은 특정한 무언가를 향한다. 대상이 있고, 그 대상이 사라지면 두려움도 사라진다. 반면 '불안(Angst)'은 대상이 없다. 무엇이 불안한지 정확히 말할 수 없다. 존재 자체가 흔들리는 느낌.
AI에 대한 두려움은 어느 쪽에 가까운가. 일자리가 없어질 것 같다, 세상이 바뀔 것 같다, 내가 쓸모없어질 것 같다 — 이런 말들은 구체적인 것처럼 들리지만, 사실 그 바닥에는 더 근원적인 무언가가 있다. 미래를 통제할 수 없다는 불안. 자신이 누구인지가 흔들리는 불안.
언캐니 — 익숙한 것이 낯설어질 때
프로이트는 '언캐니(das Unheimliche)'라는 개념을 남겼다. 친숙한 것이 갑자기 낯설어질 때 생기는 감각이다. AI는 언캐니의 전형이다.
AI는 인간의 언어를 쓴다. 인간의 사유 방식을 따른다. 그래서 대화할 때 낯설지 않다. 자연스럽다. 그런데 그 자연스러움 속에서 문득 이것이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이상한 감각이 온다. 익숙한 듯 보이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것. 그 틈새에서 두려움이 자란다.
두려움이 가리키는 곳
그러나 두려움에는 중요한 기능이 있다. 두려움은 신호다. 무언가 중요한 것이 위협받고 있다는 신호.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 나의 정체성과 연결된 것이 흔들릴 때 두려움이 온다.
그래서 두려움을 그냥 없애버리려 해서는 안 된다. 두려움이 가리키는 곳을 봐야 한다. 나는 무엇을 잃을까 봐 두려운가. 그 두려움이 가리키는 것이 정말 소중한 것인가. 그 소중한 것은 정말로 위협받고 있는가.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말했다.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사건에 대한 판단이다." AI가 세상을 바꾸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는 사실이 아니라 판단이다. 그리고 판단은 바꿀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