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하지 못한다. 이직을 생각하는데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 블로그를 시작하려는데 첫 글을 쓰지 못한다. 코칭을 받아보고 싶은데 신청 버튼을 누르지 못한다. 이것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두려움의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40대가 되면 잃을 것이 많아진다. 안정적인 수입, 쌓아온 평판, 가족의 생계. 새로운 것을 시도했다가 실패하면 이 모든 것이 위태로워질 것 같다. 그 두려움은 합리적이다. 그러나 그 두려움에 지배당하면 삶은 점점 좁아진다. 안전한 것만 반복하다 인생 2막을 맞이하게 된다.
40대의 가장 흔한 후회는
"그때 했더라면"이다.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익숙해질 뿐이다.
아이는 무모하다.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말을 걸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선다. 이것은 겁이 없어서가 아니다. 아직 잃을 것이 없어서다. 실패해도 복구할 시간이 충분하다는 것을 몸으로 알기 때문이다.
40대는 다르다. 이미 많은 것을 쌓아왔다. 직함, 관계, 자산, 평판. 새로운 시도가 이것들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검증된 것만 한다. 이미 잘하는 것만 한다. 이것이 나이 들수록 안전지대가 좁아지는 이유다. 용기가 줄어든 것이 아니라, 지켜야 할 것이 많아진 것이다.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 전에 성공 확률부터 계산한다. 될 것 같지 않으면 시작하지 않는다. 그러나 시작하지 않으면 확률은 영원히 0이다.
실패한 사람을 보며 안도한다. "나는 안 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안도는 시도하지 않는 자신을 합리화하는 것이다.
준비가 더 되면 시작하겠다고 생각한다. 준비는 끝이 없다. 준비가 완벽해지기를 기다리는 것은 시작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다.
용기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행동하는 것이다. 전자는 무모함이다. 후자가 진짜 용기다. 40대에게 필요한 것은 두려움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과 함께 행동하는 능력이다.
안전지대(comfort zone)라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그 구조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드물다. 안전지대 밖에는 세 개의 영역이 있다. 각 영역에서 무엇이 일어나는지를 알면 어디까지 나가야 할지가 분명해진다.
용기는 한 번의 큰 결단으로 생기지 않는다. 작은 불편함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면서 조금씩 확장된다. 근육이 작은 자극의 반복으로 강해지듯, 용기도 작은 시도의 반복으로 훈련된다. 핵심은 공황지대가 아닌 성장지대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새로운 것을 시도할 때마다 온다. 용기 있는 사람들도 두렵다. 차이는 두려움을 신호로 해석하는 방식이다. 두려움을 "하지 말라는 신호"로 읽는 사람이 있고, "중요한 것이 있다는 신호"로 읽는 사람이 있다.
두려움이 크다는 것은 그만큼 그것이 자신에게 중요하다는 뜻이다. 무서우면 무서울수록, 그것이 삶을 바꿀 가능성이 높다. 두려움의 방향을 따라가는 것이 성장의 방향이다. "지금 무엇이 두려운가"라는 질문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의 답이다.
이름을 붙인다. 막연한 두려움은 크게 느껴진다. "나는 지금 평가받는 것이 두렵다"처럼 구체적으로 말하면 두려움이 작아진다. 언어화가 감정의 크기를 줄인다.
최악을 상상한다. 실패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끝까지 생각한다. 대부분의 경우 최악의 결과는 상상보다 훨씬 감당 가능하다. 최악이 명확해지면 두려움의 실체가 작아진다.
시작을 작게 만든다. 두려운 것을 한 번에 다 하려 하지 않는다. 오늘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한 걸음만 정한다. 작은 시작이 두려움보다 행동을 앞에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