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너 라이프 2.0 시리즈 2 · 1부
라이브러리 · AI 시대, 세상이 바뀔수록 더 중요해지는 것들 · Chapter 3
Chapter 3 · 로고테라피적 시각

의미가 생존의 조건이다

— 로고테라피적 시각
읽기 약 8분·1부 · 세상과 인간을 새롭게 보다

1944년 겨울, 빅토르 프랭클은 아우슈비츠에 있었다.

가족을 잃었고 그의 평생의 작업이었던 로고테라피 원고를 빼앗겼다. 그리고 이름 대신 번호로 불렸다.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이 사라진 상태였다. 그 극한의 조건에서 프랭클은 한 가지를 관찰했다. 똑같은 환경에서도 어떤 사람은 버티고 어떤 사람은 무너지는지를.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체력도, 나이도, 의지력도 아니었다.

살아야 할 이유를 가진 사람들이 버텼다.

프랭클은 그 관찰을 몰래 메모하였고 수용소를 나온 후 메모를 토대로 로고테라피를 만들었다. 로고테라피는 로고스(의미) + 테라피(치료)가 합쳐진 의미치료라는 심리치료법이다. 인간은 의미를 향해 나아가는 존재이며, 의미의 상실은 단순한 심리적 고통이 아니라 생존 자체를 위협한다는 것이 그의 핵심 통찰이었다.

극한의 상황에서 발견된 이 통찰은 평범한 일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실존적 공허

프랭클은 현대인의 고통을 실존적 공허라고 불렀다. 배가 고픈 것도 아니고, 아픈 것도 아니고, 특별히 잘못된 것도 없는데 무언가 빠진 듯한 느낌을 말한다. 열심히 살고 있는데 무엇을 위해 사는지 모르겠는 느낌.

이것은 게으름의 결과가 아니며 오히려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에게 더 자주 찾아온다. 외부의 목표를 향해 달려오다가 그 목표에 다다랐을 때, 혹은 그 목표가 갑자기 사라졌을 때, 비로소 자신에게 묻게 된다. 나는 왜 이것을 하고 있었는가.

그러나 현대 사회는 이 공허를 채우는 방식을 잘못 가르치고 있다. 더 많이 소비하고, 더 많이 성취하고, 더 많이 경험하라고 부추기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들은 공허를 잠시 덮을 수만 있을 뿐 채우지는 못한다. 의미의 공백은 의미로만 채워지기 때문이다.

의미를 발견하는 세 가지 경로

프랭클은 의미를 발견하는 경로를 세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는 창조적 가치다. 무언가를 만들고, 기여하고, 세상에 남기는 것에서 의미를 찾는 경로다. 일, 작품, 관계, 지식. 자신이 존재함으로써 세상에 더해지는 것이 있다는 느낌이 여기에서 온다. 많은 사람들이 직업에서 의미를 찾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다. 그러나 이 경로만 가지고 있던 사람은 직업이 사라지거나 변형되어 버릴 때, 곧바로 의미의 기반 자체를 잃어버리고 만다.

둘째는 경험적 가치다. 무언가를 깊이 경험하는 것에서 의미를 찾는 경로다. 아름다움, 진실, 사랑. 자연 앞에서 압도되는 느낌, 음악에 완전히 몰입되는 순간, 타인과 깊이 연결되는 경험 등을 말한다. 이것들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이다. 성취와 무관하게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

셋째는 태도적 가치다. 프랭클이 가장 강조한 가치다. 피할 수 없는 고통 앞에서도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다. 상황을 바꿀 수 없을 때도 그 상황을 대하는 방식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데 이때 그 선택이 의미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아우슈비츠에서 프랭클이 발견한 것이었다. 모든 것을 빼앗겨도 빼앗길 수 없는 마지막 자유, 즉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바로 이것이다.

의미는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다

프랭클은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라고 했다. 미묘하지만 중요한 구분이다.

만들어낸다는 것은 없는 것을 억지로 붙이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자신 안에서 나온 것이 아니기에 오래가지 않는다. 발견한다는 것은 이미 있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이다. 삶 속에서, 관계 속에서, 경험 안에서, 고통 안에서 의미는 이미 존재한다. 다만 우리는 그것을 제대로 보지 못했을 뿐이다.

의미의 발견은 서서히 일어나는 과정이기 때문에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삶 속에서는 일어나기가 어렵다. 잠시 멈추어 돌아보고, 자신에게 묻는 시간이 필요하다. 누군가가 그 질문을 대신 던져줄 수 없기에 스스로 던져야 한다.

AI 시대에 의미가 더 긴급해지는 이유

프랭클의 통찰은 수십 년 전의 것이지만 지금 더 냉혹하게 적용된다. 산업화 시대에는 일이 의미의 주요 원천이었다. 무언가를 만들고, 기여하고, 인정받는 것. 이러한 일을 통한 의미 구조가 삶의 의미를 상당 부분 채워주었다. 그런데 AI가 인지 노동을 대체하기 시작하면서 그 구조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내가 잘하던 것을 기계가 더 잘하게 되고, 내가 가치 있다고 믿던 능력이 갑자기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되어 버린다. 결과적으로 창조적 가치의 원천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경험적 가치와 태도적 가치가 더 중요해진다. AI가 대신할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AI에게는 몸이 없고 시간이 없고 죽음이 없다.

경험적 가치가 대체되지 않는 이유는 경험이 몸과 시간을 통해서만 생겨나기 때문이다. 노을을 보는 것, 사랑하는 사람과 밥을 먹는 것, 오랜 시간 무언가를 배우는 것. 이것들은 텍스트 데이터로는 얻을 수 없는, 살아있는 몸이 시간 속에서 겪는 것들이다. AI는 노을에 대한 모든 데이터를 갖고 있지만 노을 앞에 실제 서 본 적이 없다.

태도적 가치가 대체되지 않는 이유는 태도가 삶의 유한성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고통을 대하는 방식, 상실 앞에서의 선택, 죽음을 알면서도 살아가는 것. 이것들은 끝이 있는 존재만이 직면할 수 있는 것이다. AI는 갑자기 전원이 꺼질 수는 있지만 죽지 않는다. 따라서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경험이 없다. 그래서 상실의 무게를 알지 못하고, 그 무게 앞에서 어떻게 설 것인지를 선택할 필요가 없다.

삶의 서사도 대체되지 않는다. 서사는 나라는 특정한 존재의 특정한 시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AI는 수백만 개의 이야기를 학습했지만 정작 자신의 이야기는 없다. 깊은 관계에서 오는 연결감, 자연과 예술 앞에서의 경이, 자신만의 삶의 서사. 이것들은 효율화되지 않는다. 따라서 AI 시대가 역설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효율이 극대화될수록 효율로 채울 수 없는 것들의 가치가 올라간다는 것이다. 대체 가능한 것들이 넘쳐날수록 대체 불가능한 것들은 더 귀해진다. 의미는 바로 그 대체 불가능한 영역에 있다.

의미를 어디서 발견하는지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차이는 AI 시대에 더 벌어진다.

의미는 삶의 장식물이 아니라 삶을 지탱하는 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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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이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