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철학자들은 왜
내 삶을 바꾸지 못했는가

지안은 삶의 답을 찾아 철학과 심리학을 뒤졌다. 사르트르, 프랭클, 셀리그만, 이키가이. 각각은 깊은 울림을 줬지만, 책을 덮고 나면 월요일 아침은 여전했다. 방향은 보였지만 지도가 없었다.

Chapter 01 · 1부

젊을 때 믿었던
그 무언가에 대하여

젊을 때 지안은 막연히 믿었다. 나에게는 무언가가 있다고.

그게 무엇인지는 몰랐다. 특별한 재능일 수도 있고, 남다른 감각일 수도 있고, 아직 꺼내지 못한 어떤 가능성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구체적인 형태는 없었지만 확신은 있었다. 언젠가는 나올 거라고. 기회가 오면 드러날 거라고. 그때를 위해 지금은 그냥 준비하는 시간이라고.

그 믿음이 어디서 왔는지 지금은 잘 모르겠다. 부모님이 심어준 것도 아니었고, 누가 그렇게 말해준 것도 아니었다. 그냥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젊음 자체가 그런 감각을 준 것인지도 모른다. 펼쳐진 시간이 무한히 많은 것처럼 느껴질 때, 사람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가능성을 크게 보기 마련이다.

나쁜 믿음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믿음이 버팀목이 됐다. 직장에서 힘든 일이 있어도, 원하지 않는 일을 해야 할 때도, 지안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건 아직 진짜 내 모습이 아니다. 언젠가 진짜 내가 나올 것이다. 그 언젠가를 향해 지금은 때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중년의 어느 날 문득 돌아보니, 그냥 평범한 삶이었다.

특별히 문제된 것은 없었다. 직장을 다녔고, 가정을 꾸렸고, 나름대로 책임을 다했다. 주변 사람들 눈에는 잘 살아가는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럭저럭 괜찮은 삶.

그러나 그게 전부였다.

지안 안에 있다고 믿었던 그 무언가는 아직 한 번도 제대로 꺼내지 못했다. 언젠가 나올 거라고 기다렸는데, 기다리는 사이에 많은 시간이 지나갔다. 30대가 가고, 40대가 가고, 50대가 됐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그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언젠가라는 말이 점점 공허하게 들렸다. 언젠가는 도대체 언제인가.

발달심리학 관점

다니엘 레빈슨은 《인생의 사계절》에서 40대 초반에서 50대 초반 사이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삶의 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직면한다고 밝혔다. 지금까지의 삶이 정말 자신이 원한 것이었는가, 남은 시간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이 질문이 찾아오는 것은 몸에 이상이 생긴 것이 아니다. 인간 발달의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더 불편한 질문이 뒤따라왔다. 혹시 처음부터 그 무언가는 없었던 게 아닐까. 젊음이 만들어낸 착각이었던 게 아닐까. 지안은 그냥 평범한 사람이고, 그 평범함을 인정하지 못하고 무언가가 내 앞에 나타나기만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 생각이 들기 시작했을 때, 지안은 그 자리에 꽤 오랫동안 머물렀다.

사람마다 이 감정을 처음 느끼는 시점은 다르다. 어떤 사람은 40대 초반에 느낀다. 조직 안에서 더 이상 올라갈 곳이 보이지 않을 때, 혹은 처음으로 후배가 자신을 추월하는 걸 목격할 때. 어떤 사람은 50대에 느낀다. 퇴직이 갑자기 현실적인 이야기로 다가오거나, 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 자신이 이제 다음 차례라는 것을 실감할 때.

시점은 달라도 느낌은 비슷하다. 열심히 달려왔는데 어디를 향해 달렸는지 모르겠다는 것.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살아온 것 같은데, 막상 돌아보면 그 무언가가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었는지 알 수 없다는 것. 그리고 남은 시간이 예전만큼 많지 않다는 것까지.

이 감정을 처음 느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애써 무시하려 한다. 바쁘게 지내면 그 생각이 들어올 틈이 없을 거라고. 혹은 반대로, 갑자기 큰 변화를 시도한다. 직업을 바꾸거나, 새로운 취미를 찾거나, 환경을 바꾸거나. 무언가 바뀌면 그 공허함이 채워질 거라고 기대하면서.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않는다.

지안은 공허한 그 느낌을 무시하지 않기로 했다.

불편했다. 지금까지의 삶이 만족스럽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애써 외면해봤자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덮어두면 잠시 안 보일 뿐이지, 거기에 계속 있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무거워질 뿐이었다.

그래서 지안은 이 질문을 붙들기로 했다.

지안 안에 있다고 믿었던 그 무언가는 정말 없었던 것인가. 아니면 꺼낼 방법을 몰랐던 것인가.

답은 바로 오지 않았다. 하지만 질문을 붙들고 있으면서 조금씩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무언가의 있고 없음이 핵심이 아니었다. 문제의 핵심은 지안이 그것을 꺼낼 수 있는 구조로 살아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젊을 때 믿었던 그 무언가. 그것은 원래 없었던 것도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그냥 한 번도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은 채, 거기 그 자리에 있었다.

지안은 그것을 다시 찾기로 했다. 이번에는 언젠가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직접 내 안에서 꺼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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