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를 만들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지안은 막상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뉴스 기사 하나를 읽었다. 도시 설계에 관한 것이었다. 도시의 구조가 사람들의 행동을 어떻게 바꾸는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보행로의 위치, 공원의 배치, 상점의 동선 — 이런 것들이 사람들이 얼마나 걷는지, 어디서 모이는지, 어떻게 시간을 쓰는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이었다.
우리는 이미 설계된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구조는 바꿀 수 있다.
그렇다. 우리 삶의 거의 모든 것이 누군가 설계한 것이다. 아침 몇 시에 일어나야 하는지, 하루에 몇 시간을 일해야 하는지, 몇 살에 학교를 가고, 몇 살에 취업을 하고, 몇 살에 은퇴를 하는지. 이 모든 것은 산업화 이후 사회가 효율적으로 작동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설계된 패턴이었다. 너무 자연스럽게 작동하고 있어서, 우리는 삶이 정교하게 설계된 것이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하고 살아왔던 것이다.
지안도 그랬다. 그 구조 안에서 수십 년을 살았다. 한 번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원래 삶이란 이런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누군가에 의해 설계된 것이라면, 자신이 원하는 대로 다시 설계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사실 인간도 프로그램처럼 자신의 환경과 성장과정으로부터 코드를 입력받는다. 태어난 시대, 자란 환경, 받은 교육, 속한 조직이 입력된 코드들이다. 우리는 그 코드대로 움직이지만, 그것이 코드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프로그래머는 코드를 바꿀 수 있다. 버그를 발견하면 수정하고, 더 나은 방식이 있으면 리팩토링한다. 삶도 마찬가지다.
사르트르가 말한 "본질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라는 말이 비로소 손에 잡히는 말이 됐다. 철학적 선언이 아니라 실제로 가능한 것이 됐다. 철학은 왜를 말했고, 설계는 어떻게를 말하고 있었다.
리처드 탈러와 캐스 선스타인은 《넛지》에서 이것을 '선택 설계(choice architecture)'라고 불렀다. 인간은 생각보다 훨씬 더 구조의 영향을 받는다. 우리는 스스로 자유롭게 선택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주어진 환경이 만들어놓은 기본값(default)을 따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코넬대학교의 카페테리아 실험이 있었다. 건강한 음식을 눈높이에, 손이 먼저 닿는 곳에 배치했을 때 학생들의 건강 식품 선택률이 25% 이상 증가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원해서 그것을 선택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구조가 선택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이것이 지안 안에서 커다란 무언가와 연결됐다. 지안은 지금까지 더 나은 삶은 의지의 문제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매번 원래 자리로 되돌아온 것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었다. 구조의 문제였다.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행동은 잘 바뀌지 않는다. 반면에 구조가 잘 설계되어 있으면, 굳이 의지를 쥐어짜지 않아도 원하는 행동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된다.
이것이 지안이 찾던 연결고리였다.
물론 코드를 바꾼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도 안다. 오랫동안 굳어진 패턴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삶에는 관성이 있고, 얽힌 관계가 있고, 예측할 수 없는 변수들이 끊임없이 들어온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관점이 지안에게 유용했던 것은, 삶을 바라보는 프레임 자체를 바꿔줬기 때문이다. 지금의 삶은 지금까지 입력되어 온 코드의 결과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삶은 어떤 코드를 새로 입력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