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불편한 질문 하나가 따라왔다. 지안은 왜 지금까지 이런 생각을 한 번도 하지 못했을까.
답은 단순했다. 바꿀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돌아보면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순응을 배워왔다. 어린아이에게 세상은 이미 작동하고 있는 곳이다. 그 안에서 잘 적응하는 것이 칭찬받는 일이었고, 그 방식을 잘 따르는 것이 가장 안전한 일이었다. 학교도, 직장도 마찬가지였다.
순응은 주어진 구조 안에서 더 잘하는 것이다. 틀은 그대로 두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설계는 다르다. 틀 자체를 먼저 들여다보는 것이다. 지금의 구조가 내가 원하는 삶과 맞는가를 묻는 것. 맞지 않는다면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다.
심리학자 에드워드 데시와 리처드 라이언은 40년에 걸친 연구를 통해 인간에게는 세 가지 기본 심리 욕구가 있다는 것을 밝혔다. 자율성(autonomy), 유능감(competence), 관계성(relatedness).
순응하는 삶이 유능감을 채워줄 수는 있다. 하지만 자율성을 채워주기는 어렵다. 지안이 오랫동안 느꼈던 그 묘한 공허함 — 열심히 살고 있는데 무언가 빠진 것 같은 느낌 — 의 정체가 거기 있었을 수 있다.
순응하는 사람은 구조가 바뀌면 크게 흔들린다. 설계하는 사람은 다르다. 구조가 바뀌어도 자신이 원하는 방향이 있기에 새로운 환경에서 다시 자신의 구조를 만들어갈 수 있게 된다.
지안은 오랫동안 순응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설계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렇다고 순응이 나쁜 것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순응 안에서 쌓은 많은 것들이 있었다. 조직에서 배운 것들, 역할을 수행하면서 얻은 경험들. 이것들은 헛된 것이 아니었다. 설계를 시작하는 지금, 그것들이 실제로 소중한 재료가 됐다.
순응 자체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순응만 해왔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렇다면 지안은 지금껏 왜 설계해보지 않았을까. 이유는 세 가지였다. 첫째, 필요를 못 느꼈다. 주어진 구조가 잘 작동하는 동안은 바꿀 이유가 없었다. 둘째, 두려웠다. 설계한다는 것은 선택을 한다는 것이고,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 셋째, 방법을 몰랐다. 지금껏 삶을 설계하는 방법을 배운 적이 없었다.
이 세 가지를 들여다보면서 한 가지를 알게 됐다. 순응과 설계는 능력의 차이가 아닌 삶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였다는 것. 그리고 그 관점은 타고난 것이 아니었고 충분히 배울 수 있는 것이었다.
이제부터는 다르게 살고 싶었다. 순응에서 설계로. 그것이 지안이 가려는 방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