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뿌리 없이 자랄 수 없듯, 의미 없는 일과 수입과 관계 설계는 오래가지 못한다. 의미는 다른 모든 영역에서 무엇을 선택할지의 기준이 되는 나침반이다.
구조를 바꾸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지안은 처음에 일이 핵심이라 생각했다. 하루의 대부분을 일이 차지하고 있었고, 삶이 제대로 동작하지 않다는 느낌도 대부분 일과 연결돼 있었다.
그런데 깊이 생각할수록 뭔가 이상했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이 나에게 의미 있는지 — 이 질문들이 먼저 해결되지 않으면 어떤 일을 선택해도 결국 원점으로 돌아올 것 같았다.
그때 깨달았다. 일이 출발점이 아니었다.
삶의 구조를 설계할 때 가장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은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니었다.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였다.
의미라는 말이 거창하게 들릴 수 있다. 인생의 목적, 존재의 이유, 삶의 사명. 이런 말들이 따라오면 갑자기 삶이 무거워진다. 하지만 지안이 발견한 의미는 그렇게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어떤 일을 할 때 시간이 빠르게 가는가.
무엇을 하고 나면 피곤해도 뿌듯한 느낌이 드는가.
어떤 이야기를 들을 때 귀가 열리는가.
무엇이 나를 아침에 일어나게 만드는가.
삶에 의미가 있다는 느낌(presence of meaning) — 이미 의미를 느끼고 있는 사람은 웰빙이 높다.
의미를 찾고 있다는 느낌(search for meaning) — 찾고 있는 과정 자체도 나쁜 것은 아니다. 찾고 있다는 것은 삶이 잘 기능하고 있다는 뜻이다.
의미는 다른 모든 영역에서 무엇을 선택할지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었다. 어떤 일을 할 것인가 — 의미가 없으면 어떤 일을 골라도 결국 원점으로 돌아온다. 수입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 어떤 삶을 살 것인지가 분명하지 않으면, 아무리 많이 벌어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결국 의미는 다른 네 가지 영역의 뿌리였다.
의미는 미래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다. 이미 살아온 시간 안에 단서가 있었다. 지금껏 지안이 가장 살아있다고 느꼈던 순간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었던 일들, 힘들었지만 뿌듯했던 경험들.
지안은 그 작업을 해보았다. 공통점이 있었다.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은 새로운 지혜를 얻었을 때, 그리고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에너지가 살아났다. 그리고 누군가의 막혀 있던 문제를 해결했을 때 힘이 났다.
가치있는 것을 배우고 만드는 것, 그리고 연결해주는 것. 그것들을 통해 살아있음을 느꼈다. 이것이 지안의 의미의 실마리였다.
의미는 한 번 발견되면 영원히 고정되는 것이 아니다. 삶이 변화하면 의미도 조금씩 달라진다. 그래서 의미는 한 번 찾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들여다봐야 하는 것이다.
의미라는 렌즈가 생기자, 다른 영역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내 삶에서 시간 가는 줄 몰랐던 순간 세 가지를 떠올려보자. 그 순간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