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게 무엇을 바라는지보다,
삶이 지금 나에게
무엇을 묻고 있는지를 묻는다.
중요한 것은 삶에게 무엇을 기대하느냐가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느냐다.
의미 도메인 (뿌리) · 방향을 잃은 시기의 재정향(Reorientation)
내가 삶에게 원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지금 나에게 요구하는 것을 찾는 작업
빈의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은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삼 년을 보냈다. 가족을 잃고, 존엄을 빼앗기고, 삶의 이유를 물을 수 있는 모든 조건이 사라진 자리에서 그는 오히려 반대의 질문을 발견했다.
우리가 삶에게 무엇을 바라는가가 아니라, 삶이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묻고 있는가. 그는 이렇게 썼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에게 무엇을 기대하느냐가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느냐다.
퇴직을 앞두거나 막 지난 사람들이 흔히 던지는 질문이 있다. 삶이 나에게 무엇을 남겨주었나. 이토록 일만 했는데 왜 이렇게 허무할까. 앞으로 남은 시간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질문을 던지지만, 이 질문에 답은 대개 오지 않는다.
삶에게 무언가를 기대하는 태도는, 삶을 하나의 채무자처럼 대하는 태도다. 그러나 삶은 애초에 누구에게도 빚진 것이 없다. 그래서 이 질문을 붙들고 있을수록, 답은 찾지 못한 채 서운함과 공허함만 쌓여간다.
삶에게 무엇을 바라느냐는 질문에는,
애초에 답이 없다.
프랭클이 수용소에서 목격한 것도 다르지 않았다. 삶에게 계속 무언가를 기대했던 사람들이 결국 먼저 무너졌다. 반대로 삶이 지금 자신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물었던 사람들은 끝까지 자신을 지켰다.
프랭클의 로고테라피는 인간을 삶에 질문을 던지는 존재가 아니라, 삶으로부터 매 순간 질문을 받는 존재로 다시 정의한다. 이 전환은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무게가 완전히 달라진다. 질문하는 사람은 답을 기다리며 수동적으로 머물지만, 질문받는 사람은 매 순간 응답해야 하는 능동적인 자리에 선다.
전환기의 사람에게 이 관점은 특히 요긴하다. 조직이 나에게 무엇을 해주었는가를 묻는 대신, 지금 이 상황이 나에게 무엇을 묻고 있는가를 물을 때, 같은 상실이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온다.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침묵만이 남지만, 응답하는 사람에게는 다음 걸음이 남는 것이다.프랭클이 남긴 또 하나의 통찰은 고통에 관한 것이다. 그는 피할 수 없는 고통이라 해도, 그것을 대하는 태도만큼은 인간에게 마지막까지 남는 자유라고 보았다. 상실도, 질병도, 늙어감도 마찬가지다. 사건 자체는 선택할 수 없지만, 그 사건이 나에게 던지는 물음에 어떻게 응답할지는 선택할 수 있다.
퇴직이라는 사건도 다르지 않다. 사건 자체를 되돌릴 수는 없지만, 이 사건이 지금 나에게 무엇을 묻고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는 있다. 그 물음에 응답하는 태도 자체가, 이미 하나의 의미가 된다.
바꿀 수 없는 사건 앞에서도,
응답하는 방식만큼은 내 것으로 남는다.
그래서 전환기는 상실의 시간이기 이전에, 삶이 나에게 처음으로 정직하게 묻는 시간이기도 하다.
프리미너의 FM-Tree에서 의미는 뿌리에 해당한다. 가지(일·수입·관계)가 잘려나가는 시기일수록, 나무는 뿌리로 돌아가야 다시 자랄 수 있다. 프랭클의 질문 전환은 정확히 뿌리로 돌아가는 방법을 알려준다. 잃어버린 가지를 원망하는 대신, 지금 이 뿌리가 무엇을 향해 뻗어야 하는지를 묻는 것이다.
삶이 나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 묻는 습관은 거창한 철학이 아니다. 아침에 눈을 뜰 때, 지금 이 하루가 나에게 무엇을 요청하고 있는지 한 문장으로 적어보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다.
일과 수입, 그리고 관계라는 가지가 흔들릴 때, 사람들은 흔히 가지 자체를 다시 붙잡으려 애쓴다. 그러나 가지가 다시 자라나는 곳은 언제나 뿌리다. 뿌리가 마르지 않았다면, 가지는 다른 모습으로 다시 돋아난다.
의미 도메인을 다시 돌본다는 것은 거창한 인생관을 새로 세우는 일이 아니다. 삶이 지금 나에게 묻고 있는 질문 하나를 매일 마주하는 일, 그것만으로 충분히 시작된다.
거창한 답을 준비할 필요는 없다. 오늘 아침, 지금 이 하루가 나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한 문장으로 적어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것이 작은 산책 한 번이든, 미뤄둔 연락 한 통이든 상관없다.
프랭클의 말처럼, 삶에게 무엇을 바라는지는 더 이상 중요한 질문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 삶이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에 응답하는 것, 그것이 전환기를 통과하는 유일하게 실질적인 방법이다.
삶을 향해 묻지 말고, 삶이 묻는 것에 응답하라.오늘의 질문 하나에 응답하는 것에서, 전환기의 의미 재정향은 이미 시작된다.
삶에게 묻기만 하던 자리에서 내려와,
삶이 묻는 것에 응답하는 자리로.